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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매경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

by 돈단지73 2023.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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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沈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품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사라졌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韓龍雲)

 

 

 

* 한용운_만해[萬海] 한용운선생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는데, 용운[龍雲]은 법명[法名]이고 속명[俗名]은 유천[裕天]이고, 자[]는 정옥[貞玉]입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를 대표로 3.1 독립선언을 이끈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1926년 [님의 침묵]이라는 첫 시집 출간을 시작으로 약 300여 편의 시 작품과 [죽음], [흑풍], [후회] 등의 소설을 남기셨습니다. 민족독립을 앞둔 1944년 입적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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