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계엄1주년] MBC스트레이트 내란 1년, 시민이 지킨 국회의사당 계엄 사태 전말
⚔️ [MBC스트레이트] 끝나지 않은 '내란(內亂)'의 1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지킨 시민들의 절규와 법정 공방의 전말
💥 프롤로그: "여기서 죽으면 안 돼요!" 헬기 소리와 함께 시작된 그날 밤의 공포
안녕하세요, 잡학다식(雜學多識)입니다. 1년 전 그날 밤, 대한민국 현대사에 다시는 없을 줄 알았던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계엄(戒嚴)이 선포되자마자, 군인들을 태운 헬기가 날아오고, 장갑차가 시민들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의 심장인 국회의사당을 무력으로 침탈하려는 충격적인 시도가 감행된 것입니다.
"와 이거 진짜 장난이 아니구나," "왜 안돼, 부끄러워요," "다 총으로 쏴버릴 거예요!" 공포 속에서도 시민들은 "이건 못 막으면 안 되는 건데"라고 절규하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장갑차를 막아서기 시작했습니다. 주저하는 사람 없이 오직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리로 뛰쳐나왔던 그날의 필사적인 저항은, 오늘날 우리가 이 사건을 단순한 정치적 해프닝이 아닌, '내란(內亂)'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최고 권력자가 무참히 짓밟으려 했던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다름 아닌 칼바람 속에서도 자발적으로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대한 사건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도 윤전 대통령과 그의 부하들은 재판정에서 책임을 회피하며 역사를 왜곡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 이 게시글은 1년 전의 계엄 사태 발생부터,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 국회의 계엄 해제와 탄핵의 과정,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내란 재판의 충격적인 법정 공방까지 모든 전말을 상세히 기록합니다.

제1장: 국회의사당 진입을 막아선 시민 영웅들
1.1. "못 가게 합시다!"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선 사람들
군인들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쏟아져 내리자, 그 순간 시민들은 피하거나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뭐하는 거야, 사람들인데 뭐하는 거야 지금! 못 가게 합시다!"
시민들은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아섰고, 일부 시민들은 "두렵지만, 뭘 해야 된다"는 생각에 앞장섰습니다. 한 여성은 두 살 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공포 속에서도 "국가를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국회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이렇게 괜찮은 나라가 됐는데, 옛날로 돌아가는 얘기가 다시 나온다고 하는 거에 개인적으로 되게 화가 났다"며, 두 동생까지 세 자매가 함께 계엄군과 맞섰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저절로 떠올랐다고 합니다."죽은 자와 산 자가 거기서 함께 외치고 함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만큼 민주주의 훼손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국민적 절박함이 광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1.2. 국회의원들의 필사적인 본회의장 사수 작전
시민들의 저항이 외부의 방어선이었다면, 국회의사당 내부에서는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필사적으로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시간을 벌었습니다.
- 교란 작전: 외부 진입을 막기 위해 "양쪽으로 찢어져서 넘으려고 하면 그때 경찰들이 거기로 몰리거든요. 그러면 상대적으로 가운데가 경비가 없어지기 때문에" 일부러 교란을 일으켜 시간을 벌었습니다.
- "동특기 전에 끝내야 한다": 밤사이 군인들이 진입하기 전에 무조건 계엄 해제 표결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모두를 움직였습니다.
- 의장 사수: 의장님의 은신과 첫 번째 담화는 혼란을 막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였습니다.
공포는 내부에서도 이어졌습니다. 한 보좌진은 "내가 혹시 이 문을 열었을 때 안에 이미 들어와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합니다.

제2장: 계엄 해제와 탄핵: 절체절명의 순간
2.1. 군인의 진입과 소화기로 맞선 저항의 순간
새벽 3시 33분,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달았습니다. "유리창을 깨고 계엄군이 본청 안으로 들어왔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입니다.
- 최후의 방어선: 군인들이 코너를 돌면서 진입을 시도하자,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소화기를 뿌리고 소화전의 호스를 끌어와 물을 뿌리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 본회의장 사수: 이들은 "저들이 들어오는 것을 우리는 막되 이 문을 계속 확보하고 있어야 된다"고 외치며 본회의장 진입을 막았습니다.
이러한 필사적인 노력 덕분에, 의장님은 마침내 의장석에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 의원은 의장님 손을 잡고 "의장님 나라 구해 주십시오, 나라 구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외쳤습니다.
2.2. 역사를 바꾼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마침내 역사적인 순간이 도래했습니다. 모두의 노력 덕분에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몇 분 뒤에 국회 본회의장에 침투한 계엄군에 의해서 일부 시설들에 대한 단전이 이루어지기 시작을 했거든요."
만약 결의안이 통과되기 몇 분 사이에 단전이 먼저 이루어졌거나, 순서가 바뀌었다면 "역사는 또 바뀌고 얼마나 큰 희생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면, 그 순간이 얼마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2.3. 불법 계엄 123일 만에 완성된 '만장일치 파면'
불법 계엄 사태 발생 이후 시민들의 끈질긴 촛불 저항 끝에,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만장일치 파면 결정을 내렸습니다.
"주문인, 대통령 윤성열을 파면한다!"
이 결정은 45년 전 5·18 광주 비극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도 "최소한 5·18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트라우마 극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없었다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갔을지도 모른다"는 이들의 증언은, 시민들의 역할이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제3장: 끝나지 않은 '내란 재판'의 논란과 책임 회피
계엄과 탄핵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거쳤지만, 사건의 주동자들에 대한 단죄는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3.1. 윤전 대통령의 황당한 궤변과 증인 압박
윤전 대통령은 재판 출석을 거부하다가 뒤늦게 등장해 여전히 "계엄은 경고성 목적이었다"는 궤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는 증인들을 직접 신문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행태까지 보였습니다.
- 충격적인 증언 공격: 곽종근 전 사령관이 윤전 대통령이 술자리에서 "한동훈이하고 일부 정치인들"을 언급하며 "당신이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말했다는 충격적인 증언에 대해, 윤전 대통령은 단순히 "술자리였음을 강조"하며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 메모 글씨체 트집: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증언에 대해서는 "메모 글씨체를 트집 잡으며" "복수심 때문에 허위 증언하는 거 아니냐"는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 부하에게 책임 전가: "모든 책임은 나에게 묻고 군인에 대한 수사와 재판을 멈추라"는 성명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고 모든 과오(過誤)는 부하들에게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습니다. "피고인 분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시는 건 아니죠"**라는 재판부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3.2. 책임 회피에 급급한 전 국무총리 및 장관들
다른 핵심 관계자들의 법정 태도 역시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 한덕수 전 국무총리: 계엄 선포 직전 문건을 받아 검토하는 CCTV 영상까지 공개되었지만, 줄곧 "저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라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습니다. 결국 최후 진술을 앞두고서야 헌법재판소 진술이 "위증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법정에서 증인 선서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제가 재판하면서 형사 재판에서 선서 거부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라는 재판부의 지적까지 받았습니다.
- 추경호 전 원내대표: 계엄 해제 의결 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그는 "증언을 거부하겠습니다"라는 말만 30번 넘게 되풀이하는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 누구도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고 고개 숙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여지가 높으며, 민주주의의 가치보다 사적인 야욕이 앞선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제4장: "우리가 서로를 구한다!" 절망을 이겨낸 연대의 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고 저항했습니다.
4.1. 응원봉과 함께 타오른 '꺼지지 않는 촛불'
과거의 촛불은 이제 응원봉으로 진화하여 광장을 빛으로 물들였습니다.
"응원봉이라는 게 사랑의 의미도 있고, 그리고 더불어서 얘는 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너희가 이 추운 날에 아무리 그렇게 얘기를 해도 우리는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다."
20대 젊은 세대는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최상병 사건 등 또래들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통해, 이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4.2. 이질적인 집단의 연대: 농민과 청년의 만남
윤전 대통령 구속을 외치며 상경하던 농민들의 트랙터 행렬이 경찰에 가로막혔던 남태령에서는 놀라운 연대가 발생했습니다. 아무런 접점도 없던 농민과 젊은 청년들이 민중 가요와 K-POP을 함께 부르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진정한 이해: "아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었구나"를 깨닫고 "내가 온전히 이해받는 경험"을 통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용기를 얻었습니다.
- 연대의 힘: 이 따뜻했던 기억은 중요한 고비마다 함께 힘을 합치는 계기가 되었고, "내가 미약하지만 내 활동이 그 사람들한테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고 힘이 돼 줄 수 있다는 걸 말합니다."
4.3. 눈보라를 뚫고 관저를 지킨 '키세스 시위대'
철조망과 차벽으로 둘러싸인 관저에 숨어 체포 영장마저 무시하던 윤전 대통령에 맞서, 시민들은 관저 앞 도로로 다시 나섰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윤성열 체포'를 외치며 밤을 지새웠던 이들을 사람들은 '키세스 시위대'라고 불렀습니다.
"다 진짜 오한이 들 정도로 굉장히 추운 날씨였는데, 시민분들이 실내로 들어가서 쉬시라고 안내를 드려도 안으로 안 들어가시고 본인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바깥에서 계속 지키시는 그런 모습"은 우리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절박한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제5장: 국민 다수의 판단: '내란'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가 계엄 1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는 국민 다수의 냉철한 판단을 보여줍니다.
5.1. 국민 70%, "이번 사건은 명백한 내란이다"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위법이라고 결정한 12·3 계엄에 대해, 국민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고 있을까요?
| 질문 | 응답 (내란에 해당한다) | 응답 (내란죄로 판결할 것이다) |
| 12·3 계엄이 내란에 해당한다고 보는지? | 69% | - |
| 윤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해 법원이 어떻게 결론 내릴지? | - | 70% |
국민 10명 중 약 7명이 이 사건을 내란에 해당한다고 보았으며, 압도적인 다수가 법원이 내란죄로 판결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5.2. 사법부의 공정성 논란: "재판이 공정하지 않고 더디다"
재판이 불필요한 시비로 늘어지고, 윤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구속 만기로 풀려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자, 국민들은 사법부의 진행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응답자의 63%가 직위현 재판부의 내란 재판이 공정하지 않고 진행 속도가 더디다는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국민의 법 감정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이런 행태는 "조속한 헌정 질서 회복이라는 목적을 인식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5.3. 국민 10명 중 6명 "내란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질문, "현재 내란이 종식되었다고 보는지?"에 대한 응답은 더욱 분명했습니다.
- 내란 종식 아님: 응답자 10명 중 6명 (약 60%)은 현 상황이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 전이므로 내란 종식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국민 다수가 내란 종식을 위해 가장 중점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윤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인물에 대한 책임 규명을 1순위(절반)로 꼽았습니다. 이는 국민들이 사건의 몸통에 대한 명확한 단죄 없이는 민주주의의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 에필로그: 민주주의는 생명체, 모두가 함께 가꾸어야 할 희망
짙은 어둠을 지나 비로소 다시 만난 민주주의. 칼바람 속에서도 따뜻했던 광장은 "우리가 서로를 구한다"는 연대의 정신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습니다."내가 너를 구하고, 너는 나를 구하고, 귀를 기울여주고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을 수 있는 공간," 바로 그 장소가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핵심 동력이었습니다.
배우 김규리 씨는 그날의 '빛의 혁명'을 "꺼지지 않을 철제 캔버스" 위에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그림은 미완성이라고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생명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늘 가꾸고 서로 협력하지 않는 한 지켜지지 않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내란에 대한 단죄를 완성하고, 흔들리지 않는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차별과 소외가 없는 사회를 맞이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희망입니다.
"거리를 행진하는 소리, 누군가는 새 날의 깃발을 쥐고 있어."
함께 걸어온 수많은 발걸음과 연대의 힘을 믿고, 우리는 더 나은 새날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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